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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가 너를 잊길 바랬겠지만, 난 널 잊지 않는다.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남긴 기억만큼 유의미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네가 사랑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짧은 스스로의 인생이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겐 너의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후배였고 네가 있어서 내 인생은 더 나아졌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너를 기억한다. 네 인생이 내게 가진 의미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로 재능있고, 훌륭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후배였다. 너를 처음에 IRC에서 만났을 때는 어디서 이런 놀라운 놈이 튀어나왔나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 이루고 싶었던, 이룰 수 있었던 꿈을 미처 못 이룬 아쉬움을 느꼈을 때는 옛날의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개그 코드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 ssh 비밀번호는
prague2004
류원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와신상담이라고 들어는 봤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인지 학교가 같은 것도 사는 곳이 가까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올해 우리의 우정을 돌이켜보며 네가 트위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어쩌다 친해졌지...? 그렇게 자주 본 것도 아닌데 역시 랜선친구가 최고다."

나는 너의 코드나 글이 좋았다. 코드는 간결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읽기 좋았다. 네가 작성한 문서들은 친절하고, 문장들이 간결했고, 고민한 흔적이 있었고, 심지어 타입세팅까지 항상 예쁘게 되어 있었다. 너는 그렇게 디테일에 강했다. 너의 유서 마지막에 적힌 자살방지 핫라인 전화번호를 보며 나는 울던 와중에 웃음지었다. 너무나도 너다웠기 때문이다.

신림동 캐리: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의 추천평을 써주신 분들과는 무슨 사이인가?
구종만: 내가 사랑하는 사이다.
신림동 캐리: 아, 그렇구나….

백만원빵을 걸고, 치열하게 원고를 쓰던 시절 너는 나의 가장 든든한 리뷰어 중 하나였다. 너는 가장 많은 챕터를 읽어주었고 기술적인 잘못, 어순, 단어의 선택, 영어 용어의 병기, 어색한 개그 같은 디테일부터, 문단별 설명과 책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태클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가장 위에 올라간 훌륭한 추천사도 써 주었다.

날짜: 2010.12.27
리뷰어: 류원하
파일 버전: 89c7a4b9
챕터: 4
쪽수: 60
코멘트: "성형 전 고등학교 사진이 공개되었다고 합시다." 하고 십만 장이 덜컥 검색엔진에 걸릴 리는 없으니까.. 그냥 성형을 언제 했나 궁금하다고 하던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상태: 거절
종만 코멘트: 에잇 이것이 나의 개그다 받아들여

이제는 다들 생업과 가정을 꾸려가느라 운영이 시들하지만, 알고스팟 운영 초반은 정말 재미있었다. 일년에 두 번씩 모의고사를 진행하면 백 명씩 참가하곤 했다. 처음엔 문제 출제 과정도 서툴러서 대회 시작한 뒤에 채점 데이터를 만들기도 했다. 네가 대회 준비를 맡아 진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노예장"이 된 이후부터) 모든 것은 달라졌다. CI 서버에서 조판된 pdf를 실시간으로 뱉어냈다. 알고스팟에 기능을 추가해서 문제 출제, 선택, 검증을 진행해서 모든 것이 훨씬 효율적이 되었다. 이렇게 일을 착착 잘 굴리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 어떻게 그런 얘기를 처음 꺼냈고, 네가 언제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너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을때, '저는 졸업하고는 종만이 형 일을 돕기로 했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던 순간이 기억날 뿐이다.

항상 내 직업적인 삶의 목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너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2013년, 새 직장을 찾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너와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 혹은 그를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곧 네 인턴쉽을 찾을 때가 다가왔고, 네가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건, 그게 아니건, 미국에서 인턴을 할 수 있길 바라며 같이 고민했었다. 다행히 팔란티어에서 장기 인턴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넌컴핏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너와는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아쉽다.

네가 작년 여름, 뉴욕에 네가 오겠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네가 그렇게 힘들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힘든 일을 겪고 잠수를 타고 있던 네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말에, 조금 들뜨기도 하고, 내가 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네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믿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Wonha Ryu
맙소사네요
제가 일을 갑자기 크게 벌인듯
걱정이기도 하고 민폐쩌는거같기도 하고
JongMan Koo
크긴 뭘 큰일이야 형네집에 놀러갈수도 있는거지 ㅋㅋㅋㅋ
민폐는 무슨 민폐 ㅋㅋ
와이프가 걱정 떼놓으래 ㅋ
Wonha Ryu
울컥하는데요 ㅠㅠ 에고
JongMan Koo
에이 뭘 ㅋㅋㅋ 우리사이에
여튼 잘 준비해서 와 ㅋㅋ

얘기가 나온 지 열흘만에 JFK에 도착한 너를 픽업해서 우리 집에 데려왔다. 시원한 여름 밤에, 우리 집 옆 허드슨 강가를 걸으며 네가 힘들어한 이야기, 우울과 싸우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난 네 어깨를 두드려 주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네가 와 있는 일주일은 즐거웠다. 남자 둘이 맨해튼을 돌아다니면서 그랜드 센트럴 셰익섁에서 햄버거도 먹고, 자연사 박물관도 가고, 센트럴 파크도, 하이라인도 갔다. 스시 나카자와도 가고 민재형도 같이 만나고 재하와 함께 조각 공원도, 놀이동산도, 해변에도 갔다. 그냥 그 때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 같다. Point Pleasant Beach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네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한 시간 넘게 눈물을 흘렸을 때에야 너의 괴로움을, 고통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정말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느꼈지만. 정신을 차린 너는 오늘 위험했지만 같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힘든 네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단 생각에 기뻤다. 너는 재하와도 너무 잘 놀아줬다. 수열이는 재하를 네가 업었을 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삼촌이 간다니까 자기가 너무 섭섭하다던 재하는, 마지막에 할 말이 없냐니까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었다. JFK의 푸드코트에 앉아 헤어짐의 시간을 뒤로 미루다, 결국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불안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흡사, 재하를 바닷가에 내놓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형도 그렇고 셋 다 잘 지내신다니 저도 기분이 괜히 좋네요.

하여간에, 저는 생각보다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고요하게 살고 있어요.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는 일은 줄어들었고요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형도, 형수님도, 재하도 어떻게 잘들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물론 잘 지내고 계시겠지만 ㅎㅎ

다행히 너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 일 얘기도 듣고, 여기저기서 발표하는 이야기도, 행사를 진행하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너의 글들은 힘들어 보였지만 나는 그저..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으려니, 하며 너의 글들 사이에 끼워넣어진 재치있는 글들과 재미있는 리트윗들에 like를 눌렀다.

올해 4월에 한국에 갔을 때는, 너와 꼭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연 준비와 모임, 친척 인사로 정신 없던 일정 중에 간신히 둘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너는 판교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신라면 다섯개 들이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식당가에서 냉모밀을 먹고 (네가 사줬다) 도지마롤을 사서 너희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Wii 도 하고 (내가 서투르게 마리오 갤럭시를 하는 걸 네가 엄청 비웃었다!) 약 빤 SBS 총선 개표 방송도 봤다. 너는 잘 차려입고 상태도 전보다 좋아보였고 나는 너를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고, 이젠 좀 멀쩡하구나 하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너는 재하가 마리오를 좋아한다는 말에 자기는 하지 않는다면서 집에 있던 Wii랑 부품들을 쇼핑백 몇 개에 나눠 넣어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때 너는 이것이 우리 둘이 보내는 마지막 시간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속도 모르고 너의 등을 다시 한번 두드리고, 내일 보자고 말하고 택시를 탔다.

재하는 귀국을 얼마 앞둔 때쯤 게임 금지를 당했고 내가 가진 유일한 너의 물건인 그 Wii 는 우리 집 지하실에 잠자고 있다. 꺼내서 재하와 함께 마리오 게임을 할 거다. 넌 그걸 원했을 테니까. 재하와 함께 게임하는 모습을 인증샷 찍어서 보내주려 했는데, 너는 그만큼 기다리진 못했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4월 14일이었다. 강남역이었다. 알고스팟 운영진들이 모여서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너는 2차를 가기 전에 먼저 집에 가야 했고 나는 너를 그때 마지막으로 안아줬다. 다시 볼 날이 있고, 그 때 너는 건강해져 있고, 우리는 계속 너드 농담 따먹기를 하고, 같이 재미난 일을 할 거라고. 나는 진짜로 그렇게 멍청하게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잠에서 반쯤 깨서 재하 손에 반창고를 발라주다가, 너의 죽음을 알리는 카톡 메시지를 보았다. 익숙한 너의 글투로 쓰여진 너의 유서를 읽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전화 통화를 하며 너의 영정 사진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종욱이와 서로를 다독였다. 우리를 이렇게 남겨놓고 떠나간 네가 원망스럽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불쌍하다.

나를 더 믿고 기대지 않은 것이, 널 도와줄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럽다. 난 네게 얼마든지 더 줄 수 있었는데, 바보같이, 어린아이 같이라도 기대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네 탓을 할 수는 없다. 넌 내게 한 번 손을 내밀었으니까. 내 앞가림을 한다는 미명 하에 너의 힘듬을 더 적극적으로 보듬어 안지 못한 내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지 못한 너를 탓해선 안되니까.

네가 원망스러운 것보다, 너에게 더 미안하다. 벌써 한달 반 전, 내가 네 생전 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을 다시 읽었다. 나는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 혼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그리고 상담은 잘 받고 있냐고 물었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 네가 내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단 댓글 중 하나는 내가 "행복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나이 먹어 보니 이게 세상에서 제일 배부른 소리." 라고 쓴 글에 "그렇읍니다" 라고 단 댓글이었다. 너는 이렇게나 힘들어 하는데, 나는 나 혼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자랑질만 했던 게 아니었을까. 좀 더 너를 적극적으로 챙겼다면, 너의 고통에 대해 좀 더 관심 가졌더라면, 너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너의 시간을 한 달이라도, 두 달이라도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반 년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삶에 대한 너의 기대가 조금이라도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 생각에 하루종일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네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로 살아간다. 너를 이 세상에 붙잡아 두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네가 그것에 기대는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어쨌건 그 온기는 너에게 완전히 전해지지 않았고 너는 새파랗게 질려 떨다가 서른도 안 되어서 짧은 삶을 마쳤다. 너는 세상을 떠나가며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지만, 그 감사하는 마음은 왠지 너의 행복으론 연결되지 못했다... 너에겐 행복할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너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차가운 공허에서 발버둥쳤을 네가 너무 안타깝고, 안쓰럽고, 불쌍하다.

지금 내게 유일한 위로는 네가 더 이상 그렇게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에 질려 떨 일은 없다는 것 뿐이다.

비록 이렇게 슬픈 마침표를 찍었지만, 너와 함께 한 기억은 여전히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네 인생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거한다. 내가 이 세상에 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네 인생이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기억하고 슬퍼할 것이다.

네가 이제 더 이상의 고통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기를 기원해. 만약 정말 내세가 있다면, 사랑받는 고양이로 태어나길 바래. 이 세상에서 만나서 기뻤다.

구종만 씀